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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0년 9월에 공군 818기 전자계산 특기로 입대해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정보체계관리단으로 자대를 배치받아 일 년 반 넘게 복무한 후 지난 5월 5일에 무사히 미복귀 휴가를 나왔다.

길고 길었던 군생활을 한 달의 글에 깔끔하게 녹여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상상속의 잘 쓴 글보다는 블로그에 올리는 못 쓴 글이 나으니까 글을 써본다.

 

입대준비

공군 교육사령부 입구

사실 난 오래전부터 정보체계관리단에 가고 싶었다. 공군이 흔히 타는 루트대로 카투사에 깔끔하게 떨어지고 공군에 지원했다. 원래 육군 SW 개발병과 산업기능요원을 고려해봤지만 당시의 실력으로는 붙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대 리스크를 안고 학년이 올라가서 다시 시도하느니 그냥 미리 공군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공군의 자대와 특기를 공군 갤러리를 들락거리며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정보체계관리단을 목표로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집 근처에 위치한다. 집 가까운 자대가 최고라는 말이 있었는데, 차로 30분 정도면 집에서 부대 앞까지 갈 수 있어서 사실상 휴가가 출발/복귀 때 반나절씩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2. 개발을 할 수 있다. 물론 당시로선 '그럴 수도 있다더라'에 불과하긴 했지만, 공군 갤러리를 열심히 탐방한 결과 정보체계관리단, XX단, XX소 3곳에선 개발을 할 있다고 들어서 SW 개발병을 포기했던 나에게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가보니 개발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작통단과 군전소가 개발을 하는지는 모른다)

3. 부대에 친한 친구가 있다. 오래된 친구가 이미 그 부대에서 복무중인데 정말 좋은 부대라고 해서 더욱 가고 싶었다.

정보체계관리 특기는 경쟁이 어느정도 있어서 자격증을 따야 해서 겨울방학동안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시험은 논리회로,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운영체제의 매우 기초를 다뤄서 조금만 공부하면 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걸 너무 열심히 공부했다고 후회했다... 실제 시험을 보면 정말 쉽게 나왔다. 참고로 자격증이 매년 3번~4번 (정확한 내용은 주관 홈페이지 확인) 있어서 한 번 신청을 놓치면 입대 시기가 꽤 미뤄지게 되니 공군 전자계산에 지원할 생각이라면 미리미리 시험 일정을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험보다 시험 기다리는 게 더 힘든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그리고 공군 갤러리와 공군 훈련소 후기를 들락거리며 훈련소 팁과 좋은 점수 받는 법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 모았다. 가면 3km 전투 뜀걸음으로 점수를 부여한다고 해서 입대 한 달 전부터 집 근처 운동장 3km를 뛰기도 했다 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습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서 체계단에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훈련소

코로나 때 드라이브 스루로 대체됐던 입영식. 지금은 다시 할수도?

훈련소는 정말 길고도 짧았다. 지금은 기억이 많이 미화돼서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지옥 같았다. 얼마나 지옥같았냐면 일기를 쓰면서 훈련소의 기억을 절대 미화하지 않겠다고 적어두기도 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집단에 나를 완벽하게 맞춰야 하는 것? 훈련소는 수많은 훈련병을 통제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다 보니 훈련소 일과의 절반은 질서를 유지하는 데 쓰였다. 주로 대기와 학과장/훈련장/식당 이동 등인데 이 시간 동안 항상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바른걸음과 직각보행을 하고 발도 맞춰야 했다. 절대 눈에 띄면 안된다. 뭐든지 집단만 있고 개인은 없는 환경이라 그런 게 참 힘들었던것 같다. 개인마다 다른 특성 (몸 어디가 아프다든지, 배움의 속도가 다르다든지 등..) 을 잘 고려하지 않는 환경이란 게 나랑 참 안 맞았던 것 같다. 이런 조직 문화에서는 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해식당 앞에서도 예외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음식을 감사히 먹겠습니다 ~~ '

그렇게 훈련소를 치열하게 수료하고 1500명 중 23등이란 제법 높은 성적으로 훈련소를 수료했다. 점수가 들어가는 항목에서는 기를 쓰고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더니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시험 전까지 방독면을 1분 내로 쓰는 게 안됐는데, 입대하기 전에 본 수많은 팁을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없이 했더니 기적처럼 통과했다. 사실 호실에서 조교 몰래 착용 연습도 몇 번 해봤다. 사격은 10발 중 4발을 맞출 정도였는데,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사격 점수가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사격이 안 들어갔던 것, 종평을 잘본 것 때문에 점수를 잘 받은 것 같다.

집으로 사회 용품들을 보낼 때 빠르게 휘갈긴 일기. '쓸데없는 규칙이 너무 많다'는 내용이다.

 

 

특기학교

훈련소 수료식을 마치고 바로 특기학교로 이동했다. 특기학교는 훈련소보다는 훨씬 널널했다. TV보는 것도 가능했고 무엇보다 전화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외부로 연락이 닿는 게 정말 힘이 되었다. 훈련소에서는 일주일에 단 5분만 전화를 사용할 수 있어 편지가 거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는데, 특학에선 사람만 없으면 외부로 전화를 걸 수 있어서 친구들한테 틈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간이 BX를 이용할 수 있어 과자를 사먹을 수 있었는데 군대 밥만 먹다가 과자를 양껏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교육시간에는 리눅스 사용, HTML, 데이터베이스, 정보보호 등을 배웠는데 다 공부하고 간 것들이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리눅스는 기본적인 명령어 사용, HTML도 기본적인 웹 페이지 사용 (무려 iframe을 사용한 페이지를 만드는 게 실습이었다..), 데이터베이스도 기본적인 조회문 정도였다. 정보보호는 배운 적이 없어서 기본적인 공격 기법이나 로그 확인하는 방법, 권한 탈취하는 방법 등이 흥미로웠는데 아무래도 리눅스를 처음 만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평가는 엄청 쉽게 나왔다.

전반적으로 시험이 다 쉬워서 자치근무 점수가 꽤 크게 작용했다. 나는 훈련소 성적으로는 전산특기 중 1등이었는데, 최종 특기학교 성적으로는 6등 정도가 나왔던 것 같다. 자대배치는 두 등수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훈련소 성적이 잘 나와도 특기학교에서 미끄러지면 원하는 자대를 가기 힘들 수도 있는데, 그래도 체계단을 쓸만한 성적이었다.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수첩. 식당 입구에서 대기하면서도 봤다

갈 수 있는 자대 목록에 체계단 외에도 같은 지역에 OO단과 XX단도 나왔고 저 멀리 MM단도 나왔는데, 고민 끝에 집근처 3곳을 1 2 3 순위로 썼다. 지금 보면 네 곳 모두 정말 좋은 자대여서, 어딜 가도 괜찮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체계단에 가야한다는 마음이어서, 등수가 밀리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평소 마인드가 어떤 평가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사소한 거여도 최대한 다 해놓아야 한다는 거여서, 특기학교의 여유로움을 잘 즐기지 못했다.

훈련소와 다르게 학과 교육이 끝난 저녁이나 주말엔 자유시간이 많은데, 대부분 공부하고 군화를 닦는 (!) 것에 썼다. 군화를 반짝반짝하게 닦으면 가점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군화를 닦는 모습을 간부가 발견하면 가점을 뿌리고 간다는 소문이 있어서, 일부러 간부들 드나드는 중앙 통로 앞에서 몇십 분씩 군화를 닦았다 ㅋㅋ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가점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불을 칼각으로 개어 놓으면 불시에 검사할 때 가점을 주는데, 그걸 받으려고 매일 아침 이불을 10분씩 갰다. 평평하게 만드려고 이불 위에 책상을 올려서 몸무게로 누르고 별 쇼를 다 했던 것 같다. 그런 힘겨운 노력끝에 그래도 가점을 받긴 했다.

예쁘게 갠 공군 이불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해야하나,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과하게 집착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태도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특기학교는 그래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사회에서는 다른 유익한 할 일이 넘쳐나는데 학점이나 시험 같은 것에 목매는 일이 많았다. 사람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반드시 지쳐서 다른 무언가는 놓치게 된다), 힘을 잘 분배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순위를 시험보다 더 가치있는 곳에 두고 시험 같이 커트라인만 넘기면 되는 것에는 적당히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자신에게 압박을 주는 것도 줄여나가야 할 것 같다.

 

자대 배치

교육사에서의 마지막 날, 특기학교를 나와 교육사 내 큰 주차장에 집합했다. 특기학교 2주 과정들이 전부 모여서 각 자대로 흩어지는 날이었다. 다른 특기학교로 간 사람들도 오랜만에다. 큰 의류대 두 개를 들고 전세버스에 탑승했다. 거의 다 모르는 얼굴이었는데, 교육사 정문을 통과할 때는 모두 한마음으로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짧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것 같은 두 달이 끝나고, 새로운 장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자대 편에서 계속~
풀 이야기가 많다. 자대 분위기, 적응과정, 사무실에서의 업무, 생활관 사람들, 루카나 별사탕인편 같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 등.. 사진을 넣으면서 써보려고 했는데 찍어둔 사진이 없다ㅜㅜ
기록을 제때제때 해야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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